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다 위를 걸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리고 베드로는 왜 물 위만 걸었을까?

그렇다면 왜 기름부음 받은 야슈아(주 예수 그리스도)는 바다 위를 걸었고, 배우는(제자) 베드로는 왜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물 위를 걸었을까? 흥미롭지? 아니면 당신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다음 내용이 잠에서 깨어나 게으른 무관심에서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내 독자 중 일부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크로스비 친구’가 문제를 덜 논란거리로 만들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항상 일을 어색하고 바다이야기  번거롭게 만들어서 우리를 멈추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모두 마음에 뿌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그것은 그것이 당신에게 유익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바로 야슈아 기름부음받은 자가 원하고 그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가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참으로 매우 논쟁적이었고, 바울과 다른 메신저들(사도들)도 복음 메시지를 전파하고 종교적/사회적 현상 또는 그 시대의 모든 전제적 규범에 맞서 긴 여행을 갔을 ​​때, 특히 노예가 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종교/인본주의/금융 규범. 속지 맙시다. 기름 부음 받은 야슈아께서 은행가의 돈 바꾸는 테이블을 뒤집은 것은 종말론적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을 경시하거나, 그것을 하찮게 여기거나, 그냥 사소한 사건으로 그것을 단순하게 읽으면, 당신은 배를 놓쳤습니다(말장난?). 따라서 우리 역사에서 이 촉매적 사건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질문에서 우리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기름 부음 받은 야슈아가 바다 위를 걸었고 베드로는 물 위만 걸었다고 지적함으로써 머리카락을 쪼개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읽을 때 문제가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22-33

더욱이 내가 만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물 위를 걸으셨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다면, 종교계에서는 전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옳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바다”라고 말하고 매우 구체적이고 중요한 이유로 “바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제 마태복음에 기록된 이야기 자체에 도달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마태복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유익하고 다른 복음서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마 14:22-33) 예수께서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곧 제자들에게 권하사 배를 타고 먼저 건너편으로 가라 하시니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시려고 따로 산에 올라가사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니라 24 그러나 배는 바람이 거스르므로 바다 가운데 물결이 요동하니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26 제자들이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근심하여 이르되 이는 영이라 그리고 그들은 두려워서 소리쳤다. 27 그러나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29 그가 이르되 오라 그리고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예수님께로 가려고 물 위를 걸었습니다. 30 그러나 그는 거센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그가 가라앉기 시작하여 부르짖어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31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 32 그들이 배에 오르매 바람이 그쳤더라 33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나아와 경배하여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모든 강조 내)